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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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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단칼럼- 아이들에게 놀이는 생존이다
내용 정만호 송학초등학교 교사

지난 어린이날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놀이터, 흔히 말하는 ‘키즈카페’를 다녀왔다. 날이 날인지라 키즈카페 안은 인산인해였다. 놀이코너마다 아이들이 많았고, 둘째 아들은 아직 어려 놀면서 다치지 않도록 봐줘야 했다. 놀이코너를 돌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와 닮은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혹시나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이것저것 놀이에 간섭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안타까웠다. 특히 실내암벽 등반장에서는 여기저기서 부모들의 지시가 들렸다. “먼저 오른손으로 이쪽 돌기를 잡아야지. 그리고 무릎을 구부려서 돌기 위에 왼발을 올려놔.” “아니야, 그렇게 하면 못 올라가잖아. 여기를 먼저 잡아야지.” “그러면 떨어지잖니? 왜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니?” 아이들을 주인으로 대하라고 만든 날이 어린이날인데 실내놀이터 안은 그런 어린이날의 의미와는 멀어 보였다.

아이들을 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거의 모든 부모가 갖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의 상황이 만만치 않다. 다른 아이들은 영어·수학 학원에서 공부하는데 내 아이만 놀이터에서 마냥 놀게 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부모로 보이기에 딱 좋다. 물론 이런 상황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라는 값싼 것을 ‘놀이’라는 값비싼 것과 바꾸는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은 놀지 않고는, 더 나아가 놀다가 다치지 않고는 살아가는 기술을 익힐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있어 놀이는 생존이고,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놀이권을 빼앗긴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힘이 약한 친구에게 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일들이 커지다 보면 학교폭력으로 번지게 되고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현재의 학교폭력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처벌 중심으로 아이들의 욕구를 억압하고 있어 아이들이 성장하게 되면 더 큰 사회문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최근 들어 섬뜩한 사건들이 뉴스의 큰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잘못이 누적된 결과는 아닐까?









큰마음 먹고 아이들을 놀게 해주려고 해도 놀 곳이 없다는 목소리도 많다. 어디를 가도 똑같이 생긴 놀이터, 그리고 낙후된 놀이시설들, 나이에 따른 구분이 없는 공공 놀이터는 아이들을 키즈카페와 같은 상업화된 놀이터로 내몰고 있다. 놀이터마저 민영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놀이터는 분명 재미있어야 하고 나이에도 맞아야 하는데 사정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제부터라도 놀이터를 만들 때부터 아이들의 희망과 요구를 반영했으면 한다. 또 화학적인 물질 보다는 생태환경을 이용한 언덕에서 내려오는 미끄럼틀, 지형지물을 이용한 터널 등 놀이터 자체가 자연과 더 가까웠으면 좋겠다. 생태환경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아이들에게 진짜 놀이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서구 끝자락 세하동에 자리 잡은 우리학교는 농촌지역에 위치한 다른 학교와는 달리 학생 수가 130~140명 정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신입생도 늘고 있다. 이런 모습이 신기하여 언젠가 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학교는 참 이상해요. 도심에서도 멀고, 학교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는커녕 전학을 오고 있으니 참 신기해요.” “맞아요. 그렇다고 다른 학교와는 다른 특별한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학년말에 아이들의 학교 만족도를 조사하면 95%의 아이들이 만족해하고 있어요.”

전근 온 첫해에는 신기하기만 했던 모습이 방과후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이제 알 것 같다. 학교 주변에는 학원이 없으므로 일단 우리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사교육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그 대신에 아이들은 학교 뒷산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로 칼싸움도 하고, 연못가에서 발 담그며 올챙이도 잡고, 민들레 홀씨를 따서 부는 것과 같은 놀이를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한다. 도심에서 누리지 못한 놀이권을 아이들 스스로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은 ‘놀이밥’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놀이는 밥과 같은 것으로 놀이를 굶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중한 내 자식이 한 끼라도 못 먹으면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이제는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밥을 배불리 먹일 때이다. 놀이밥, 좀 과식한들 어떠랴.

무등일보 zmd@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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