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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권 vs 교권" 선생님 헷갈려요‘ 인권 공부’ 함께해요
내용 지난 2010년 10월5일은 우리나라 학생인권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날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공식 선포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서울시를 비롯해 다른 시·도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고 조례 제정에 참여하는이른바 ‘학생인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조례 공식 선포 뒤 경기도 내 학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내용과 기준에 맞게 생활규정을 포함한 규정 개정을 진행했다. 시행 3개월.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 12월23일, <아하!한겨레> 학생기자들이 경기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학생인권조례 안착화를 위한 토론회’를 찾아 학생인권조례 공식 선포 이후의 학교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들어봤다. 이 토론회는 조례 선포 이후의 학교 변화를 되짚고, 조례 정착에 필요한 과제들을 정리하는 자리였다.

학생기자들이 찾아가봤어요 | 학생인권조례 안착화 토론회 현장


“수업 시간에 음식 시켜서 먹는 아이도 있습니다. 자는 아이들도 물론 많구요. 수업 듣는 걸 거부하고 다른 반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죠. 한마디로 참담합니다.”

(경기 ㄱ중 생활인권 담당 교사)

“시험 바로 전에 자율학습을 하잖아요. 수업이 다 나간 상태에서 교과서를 못 가져간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벌점을 주고 동시에 교실 뒤에 서 있으라는 이중처벌까지 하셨죠. 항의를 하니까 또다시 벌점을 주시더라구요. 벌점제가 때리지만 않을 뿐이지 학생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서울 ㅈ고 ㄱ군)








학생들은 “말만 인권조례이지 새로 제시된 대안들이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인권 보장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이 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교사들은 “주어진 권리와 책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이 나와서 수업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물론 학교별 사례들은 다 달랐다. 하지만 조례 시행으로 교사와 학생 사이가 적잖이 불편한 관계가 돼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경기 부천 소명여고 박영양은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대립구도가 형성된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 등 35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어진 토론회장 분위기는 이렇게 다른 주장들이 부딪치면서 시종일관 심각했다.



시행 석달, 혼란스러운 학교

“조례안 잘 모른다” 반응도

‘교사 vs 학생’ 입장 엇갈려


학생 배제한 공청회도 열려

언론은 부정적 사례 부풀려

생활밀착형 인권교육 절실




3개월 동안 조례 안착을 방해한 걸림돌은 뭘까? 토론회 참석자들은 ‘인권조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조례가 시행됐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손꼽았다.

박영양은 “홍보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며 “조례 시행의 대상자인 학생들이 인권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고 있고, 심지어 교사들도 인권조례에 대한 표면적인 몇 부분만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니까 체벌의 대체안으로 나온 그린 마일리지(상벌점) 등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내신 1점이 아쉬운 학생들 처지에서는 “점수를 더 받고 덜 받는 대안보다는 차라리 맞고 끝내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학생인권단체인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ㅈ고교 조아무개군(아이디 ‘따이루’)은 “벌점제가 복잡하다 보니 마음 편하게 맞고 만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인권에 대한 학생들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태도인 것 같다”고 학생 입장에서 자기비판도 했다.

학생들의 인권의식이 이런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는 데는 조례 시행 전 충분한 인권교육과 홍보 그리고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탓도 컸다. 조군은 “학교 쪽에서 학생의 참여를 배제한 부분이 없지 않다”며 “학부모한테 나눠주는 가정통신문 수준의 자료만 한차례 나눠줬을 뿐 학생들한테는 제대로 된 공지나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공청회를 해도 학생이 참여하지 않는 형식적인 공청회만 있는 일이 많아요.”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인권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됐지만 정작 일부 학교에서는 오늘 토론회에 참여하려는 학생에 대해 ‘인권’ 운운하면 징계하겠다며 참여를 막고 있다”고도 했다.

이 상황에서 언론이 특정 사례를 부풀리기 식으로 보도하면서 조례안의 의미 자체를 무력화시켰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학부모 박윤임씨는 “일부 학생들의 그릇된 행동과 인권조례 탓으로만 돌리는 일부 언론의 왜곡된 보도가 조례 안착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수원 매현중 김성호군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정말 심각한 교실 붕괴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일부 학교 특정 교실에서 벌어진 사례를 부풀려서 보도하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사실 제도가 도입되면 시행착오는 당연히 겪는 거잖아요. 이를 두고 무조건 실패로 단정하고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언론이 ‘체벌 전면금지 이후 심각해진 교권침해 사례’로 꼽은 ‘여교사 성희롱 동영상’은 얼마 전 경찰 수사 결과 체벌 금지 시행 전에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조례와 관련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교사들도 불만이 많았다. 토론자로 참석한 용인 동백고 김유성 교장은 “학생들에 대한 보도도 그렇지만 반대로 일부 선생들의 그릇된 행동을 두고 전체 교사들의 문제인 것처럼 매도하듯이 보도하는 것도 문제”라며 “교사들을 잠재적인 인권파괴자로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논란이 있는 가운데 올해 3월부터 경기도 내 모든 초·중·고교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취지에 걸맞게 학교 규정이 시행된다는 것이다. 현장은 제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 있고, 시간은 부족하다. 박진씨는 “하지만 대체 프로그램이나 대안 등이 없다고 해서 조례를 부정하는 것은 권리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학생들은 조례 안착에 필요한 대안이 학생들의 일상에서부터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양은 교육청 쪽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내용이 담긴 단어장이나 플래너를 배부해 학생들이 조례에 좀더 친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제작을 통해 청소년들한테 영상매체로 쉽게 접근하는 등의 여러 홍보 방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 화장실 거울 옆이나 칠판 등에다가 조례에 관한 홍보물을 붙이고 학생이나 교사 모두 인권에 대한 의식부터 기르게 했으면 좋겠어요. 또 학교에 학생, 학부모, 교사가 참여하는 학생인권조례 홍보부서를 만들어서 조례가 정착할 때까지 홍보와 교육 등에 힘쓰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물론 더 근본적인 변화는 학생과 교사를 중심으로 한 교육주체 사이의 ‘신뢰 형성’이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수원 유신고 최형규 교사는 “사람을 지향하는 교육이 반인권적인 방안으로 이뤄질 수 없다”며 “학생은 곧 통제 대상이라는 틀을 깨고 학생과 교사의 연대, 관계 증진이라는 새로운 학교 문화가 생겨야 조례도 안착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학 학부모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려면 교사 한 사람당 담당하는 학생 수가 대폭 줄어야 한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신뢰’는 학생과 교사뿐 아니라 교육주체와 교육당국의 교육철학 사이에서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자녀가 수원 산남중에 다닌다고 밝힌 한 학부모는 “입시 경쟁 앞에서 인권을 포함한 모든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례 하나로 학교 문화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조례 안착화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입시 경쟁 구조가 개선돼야 합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인권조례를 통해 학생인권 향상을 도모하는 건 좋아요. 그런데 인권조례 제정하면서 안산 동산고를 자사고로 지정하는 건 무슨 태도인가요. 입시경쟁이 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들 인권이 보장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얘기 아닌가요.”

이상윤(미양고), 유현조(대원고), 김다빈(구현고)

김서로(이화외고) 학생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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