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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자유게시판


작성일 200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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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멋져(가정원예과 읽어보세요)
작성자 김덕기
내용 ‘당신 멋져’
김덕기(양주바이오농업대학 가정원예과)

나는 인생 이모작 첫해에 양주바이오농업대학에 입학한 늦깍이 대학생이다.
이 대학은 정규 대학이 아닌 양주시가 전문 농업인이나, 귀농인, 농업에 관심을 가진 시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1년 과정으로 2006년 문을 열었다.
매년 교육 프로그램이 바뀌는데 올해는 한우과와 가정원예과를 운영하고 있고 나는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3명이 많은 가정원예과 09학번 2번이다.
가정원예과는 매주 목요일 오후2시부터 4시간씩의 수업을 하는데 세 차례 무단결석을 하면 곧바로 퇴학시킬 정도로 학칙이 매우 엄격하다.
개강 한달여만에 한우과와 가정원예과에서 자퇴생이 2명씩이나 나왔다고 한다.
늦깍이 대학생인 나는 수업시간 30분전에 강의실에 제일 먼저 입실하여 맨 앞자리에 교재를 펴놓고 수업을 기다릴 정도로 학교생활에 매료돼 있다.
대학생활에 푹 빠져 잇는 것은 엄격한 학칙 때문이거나 혹시 졸업식 때 모범상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시상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과 삶에 작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실직자롤 토해낸 IMF 파동을 신문사에서 용케 견뎌냈던 나는 직장생활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때부터 귀농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5년 뒤 고향을 떠난 지 20년만에 중계동의 아파트를 팔고 고향과 가까운 덕정 주공 아파트로 이사, 서울로 출퇴근을 했다.
언론사를 떠난 2004년 가을 귀농을 선언하며 남면 한산리 농지에 곧바로 단독주택 공사에 들어갔지만 축구계에서는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한국축구연구소 사무총장이라는 거창한 직함으로 그해 초겨울 서울 출근을 다시 하는 통에 나의 가족들은 전원주택에서의 여유로움보다는 전철역이나 동두천 덕정 시내를 가기위해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 불편함이 새로 생겨났다.
육십이 되는 올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겠다고 작정한 나는 연구소에서 틈틈이 영농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이 대학 입학 안내공고에 감격하며 1착으로 등록하여 자랑스런 늦깍이 대학생이 된 것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며 잔소리나 해댈 수도 있을 사람이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며 예습 복습을 하는 나의 모습에 아내도 덩달아 신나는 모양이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일이 낯설지 않지만 원예치료, 토양과 비료, 기초재배학, 생활원예, 친환경농업의 모든 과목이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화초를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이런 저런 화분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다육식물이 사람에게 왜 필요한 지, 푸른 색깔의 식물이 등 푸른 생선보다 왜 더 좋은 지는 그동안 몰랐었다.
이 대학 강사진은 농대 전 현직 교수와 전문기관 연구원으로 모두 농학박사들이다.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경험이 많아서인지 여간 재미있게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강사는 기초재배학을 가르치시는 한경대 명예교수인 이문원 박사다.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최고 인기 교수로 떠오른 것은 실습 위주 교육에 매 시간 준비된 각종 도구와 화초를 학생들에게 모두 나눠 주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나 내가 이 교수를 진짜 좋아하는 이유는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첫 강의 때 던졌던 멋진 유머 때문이다.
60대 후반의 이 교수는 아마도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늘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수업시간에도 모자를 벗지 않는다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는 맛깔 나는 유머에는 늘 강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나의 삶에 변화를 줄 정도로 내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있는 유머는 ‘당신 멋져’다.
이 교수는 술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외치는 구호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학생들은 합창하듯 ‘~~~위하여’라고 외쳤다.
‘아직까지 군사문화 잔재인 ~~~위하여를 외치느냐.’고 핀잔을 한 이 교수는 ‘이제부터는 <당신 멋져>로 바꾸라.‘고 했다.
‘당신 멋져’가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게 져주면서 살자’라는 ‘당신 멋져’의 풀이에 이어 이 교수의 선창으로 ‘당신 멋져’를 세 차례나 외쳤다.
이 교수는 ‘변치말고 사랑하며 또 만나자’는 의미의 ‘변사또’라는 마지막 잔 건배 구호를 보너스로 알려 줬다.
이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당신 멋져’를 되뇌였고 집에 도착하여 아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당신 멋져’를 소리없이 외치자 가슴이 뭉클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 해온 30여년간의 체육기자 생활은 이기기 위한 전쟁이었다.
승부욕이 유난히 강했던 탓에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도 이기기 위한 삶이었을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 왔다.
아내와 36년간 큰 다툼 없이 지금껏 잘 살고 있지만 그동안 얼마나 져주었는지에 이르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미안했다.
이 교수의 첫 강의 후 ‘당신 멋져’를 소리없이 외치며 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신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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